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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이야기

[역사]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하지 않고 위화도회군을 한 이유

by 불빛_ 2019.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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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요동정벌을 하지 않고 위화도회군을 한 이유


고려 말 이성계는 명나라의 요동을 공격하기 위해 떠났지만

공격을 해보지도 않고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여 돌아옵니다.

무슨 이유로 전쟁을 위해 떠났다가 그냥 되돌아왔을까요?




요동정벌 

당시 중국은 원나라가 점점 힘을 잃고 몰락하였고

명나라가 중국 땅의 새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명나라가 본격적으로 영토를 넓히기 시작하면서 

철령 이북의 땅에 철령위를 설치하겠다며 고려에 영토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철령 이북 땅은 고려 땅이었지만 원나라 때 쌍성총관부가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원나라가 힘을 잃어 세력이 약해지자 고려가 공민왕 때 되찾은 땅입니다.


당시 고려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영은 명나라의 이런 요구가

고려를 침략하기 위해 압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강하게 반발하였고

고려가 먼저 요동 지역을 공격해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이성계는 4불가론을 제시하면서 요동정벌을 반대합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둘째, 여름에는 농사가 바빠 군사를 동원하기 어렵다.

셋째, 많은 군사를 움직이게 되면 왜구가 쳐들어 올 것이다.

넷째, 장마철이라 덥고 습해 전염병에 걸릴 것이다.


이성계의 4불가론을 듣고 우왕은 흔들리기도 했지만

최영의 뜻이 너무 확고했기에 우왕은 요동정벌을 결정합니다.


그렇게 요동정벌을 위해 최영을 최고 책임자인 8도 도통사로 삼고

조민수를 좌군 도통사로 이성계를 우군 도통사로 삼아

최영은 전체적인 지휘를 하고 군대는 이성계와 조민수가 통솔하여 요동으로 향했습니다.




위화도 회군 

요동정벌을 위해 원정을 떠난 이성계는 압록강에 위치한 위화도에 도착했지만

물이 불어나 강을 건너기 어렵다는 이유로 14일을 지켜만 봅니다.

또한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고 여름철이라 싸우기 힘들다고 하는 등

여러 이유를 말하며 군대를 되돌릴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조정에서 이러한 요구를 받아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성계는 조민수와 모의한 후 군사들을 설득하여 회군을 결정하고

군대를 돌려 반란의 주동자로 개경을 향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우왕과 최영은 서경(평양)을 떠나 수도인 개경(개성)으로 돌아가

반격을 준비하였으나 결국 개경은 함락되고 우왕과 최영은 사로잡히게 됩니다.



결론 

이렇게 권력을 잡은 이성계와 조민수는 우왕을 폐위시키고 

강화도로 유배 보냈으며 최영도 유배를 보낸 후 제거합니다. 

그리고 우왕의 아들인 창왕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 후 이성계는 조민수와 대립하다가 승리하여 조민수를 유배 보냈으며 

창왕마저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왕으로 세워 고려의 모든 실권을 장악하였으니

사실상 위화도회군이 조선이 시작되는 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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