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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이야기

[역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장사상륙작전의 비밀

by 불빛_ 2019.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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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장사상륙작전의 비밀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 전역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충분히 전쟁을 준비했던 북한군은 남진을 계속하였습니다.

유엔은 북한의 공격을 '침략행위'라고 선언하고 멈출 것을 요청했지만

북한은 이를 묵살하였고 미국과 유엔은 한국군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맥아더는 불리한 전세를 뒤집기 위해 인천 상륙을 준비하였고

결국 인천을 탈환하고 서울까지 탈환하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적을 교란시키라는 임무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장사상륙작전에 참여한 772명의 학도병입니다.




장사상륙작전 

'낙동강 방어선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북한군의 거점인 동해안 영덕 지구로 상륙하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한국군의 작전을 유리하게 하라' -육군본부 작전 제174호-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벌어진 장사상륙작전은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후방을 교란시키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또한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병력 분산과 혼란을 주기 위한 양동 작전이었습니다.


겨우 2주의 훈련만 받은 평균연령 17세 정도인 학도병들은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문산호에 몸을 실어 상륙지점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태풍으로 인해 배는 좌초되고 적의 사격으로 상륙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10여 시간의 사투 끝에 결국 상륙하였고 보급로를 차단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실제로 북한군은 동해안에 한국군이 상륙한 것에 집중하였다고 합니다.


이 작전은 3일 후 돌아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3일간의 물자만 지급되었으나

배가 좌초되어 돌아가지 못하였고 총알과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임무를 계속 수행하였습니다.


그사이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였고 학도병들을 구출하기 위해 뒤늦게 배를 보냈지만 

학도병들은 대부분 전사하였으며 적의 집중사격으로 승선하지 못하고 포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결론 

열악한 상태에서 6일간의 치열한 전투로 작전에는 성공했지만

139명의 전사자와 92명의 부상자가 나왔으며 이 외의 대부분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또한 비밀작전이었던 이유로 전쟁이 끝나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고 잊혀졌지만

1997년 작전에 쓰인 문산호와 유해들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인천상륙작전은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엄청난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장사리에 상륙해서 물자도 지원군도 없이 버틴 학도병들이 없었다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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