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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려시대

[역사] 신라 말의 혼란과 후삼국(후백제,후고구려) 성립과정 정리

by 불빛_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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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의 혼란과 후삼국(후백제,후고구려) 성립과정 정리


◈ 신라 말의 혼란

 ▷ 6두품의 성장

  1. 골품 제도를 비판하며 능력에 따른 정치를 추구

  2. 호족들과 결탁(최언위, 최승우 등)

 ▷ 민란과 봉기

  1. 농민에 대한 수탈이 가중되어 농민 생활이 피폐해짐

  2. 신라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높아짐

  3.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이 봉기(원종과 애노의 난, 적고적의 난 등)

 ▷ 호족의 등장

  1. 전국 각지에서 세력을 형성하며 점차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남

  2. 스스로 성주나 장군이라 칭하면서 지역의 행정권, 조세권, 군사권 등을 장악

  3.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종을 후원하며 선종 세력과 결탁

  4. 신라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




◈ 후백제(900 ~ 936)

 ▷ 서남해안의 변방비장 견훤이 농민과 규합

 ▷ 무진주(광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름

 ▷ 완산주(전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후백제를 세움(900)

 ▷ 모든 관서와 관직을 정비

 ▷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을 차지

 ▷ 경주를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왕으로 세움

 ▷ 중국(후당, 오월)과 일본에 사신을 보내 외교관계 체결

 

◈ 후고구려(901 ~ 918)

 ▷ 신라 왕족의 후예인 궁예가 호족 세력과 초적을 토대로 성장

 ▷ 처음에는 기훤의 부하가 되었다가 다시 양길의 밑으로 들어감

 ▷ 병사들의 신망을 얻어 장군으로 추대되며 지휘권을 가짐

 ▷ 궁예의 세력이 커지자 호족들이 귀부(왕건 등)

 ▷ 양길을 몰아내고 송악(개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움(901)

 ▷ 신라 땅의 절반 이상을 후고구려 영토로 편입

 ▷ 국호를 마진(904)으로 바꿈 

 ▷ 국정을 총괄하는 광평성을 설치하고 9관등제 마련

 ▷ 도읍을 송악(개성)에서 철원(905)으로 옮김

 ▷ 국호를 태봉(911)으로 다시 바꿈

 ▷ 연호 : 무태(904), 성책(905), 수덕만세(911), 정개(914)

 ▷ 자신을 미륵불이라 칭하며 전제 정치 도모

 ▷ 농민들에게 지나친 세금을 부과하여 민심을 상실

 ▷ 많은 관료들과 부인, 자식들까지 죽임

 ▷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궁예를 왕위에서 축출

 ▷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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