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옮긴 이유 사비천도
성왕은 백제 26대 왕으로 무령왕의 아들입니다.
백제 후기의 부흥을 이룬 왕이며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성왕의 업적 중에서 사비천도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미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던 백제가
또다시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백제가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긴 이유 |
백제는 개로왕 시기에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강유역을 빼앗겨
아들인 문주왕은 어쩔 수 없이 도읍을 웅진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이전 글 -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겨야 했던 이유 웅진천도 참고)
문주왕은 고구려의 남하를 막기 위해 방어에 유리한 웅진(공주)을 선택했던 것인데
웅진은 방어에는 좋았지만 비좁았으며 나라를 발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문주왕 이후로 동성왕, 무령왕을 지나면서 나라가 점차 안정되자
성왕은 백제의 발전을 위해 넓은 평야지대를 끼고 있는 사비(부여)로 천도를 단행하였습니다.
웅진천도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사비천도는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는데
천도가 결정되고 부소산성을 축조하였으며 여러 시설들을 차례로 갖추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천도를 성공적으로 이끈 성왕은 그 후 국호를 '남부여'로 바꿔
백제가 부여의 뿌리라는 것을 강조하며 단결을 도모하였습니다.
이는 백제는 고구려가 아닌 부여의 후예라는 것을 내세워 고구려와 싸울 의지를 나타낸 것이며
수도를 옮기는 것에 대한 귀족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위한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결론 |
사비천도 후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였으며 중앙관청과 지방제도를 정비하였고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해 개로왕 시기에 잃은 한강 유역을 되찾기도 하는 등
백제의 중흥을 이뤘으며 이로 인해 왕권도 점차 강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진흥왕이 백제의 땅까지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모두 차지하자
신라와 전쟁을 하였고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에 의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제동맹은 이때에 완전히 깨져버렸고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와 신라는 적대적인 관계가 계속되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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