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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이야기

[역사] 피바람이 불었던 세종대왕의 아들들 (문종, 세조, 안평대군)

by 불빛_ 2019.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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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람이 불었던 세종대왕의 아들들 (문종, 세조, 안평대군)


세종대왕의 가계도를 보면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문종의 아들인 단종을 비롯해서 안평대군, 임영대군, 금성대군

여기에 계양군, 밀성군, 한남군, 영풍군 등도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 문종과 수양대군, 안평대군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종대왕 가계도


세종대왕의 아들들 문종, 수양대군, 안평대군

첫 번째, 문종

문종은 세종의 첫째 아들로 1450년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정종, 태종, 세종 모두 첫째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 최초로 장자 계승을 한 왕이기도 합니다.

재위 기간이 2년 밖에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그냥 단명한 왕이라고만 알고 있지만

문종은 1421년(세종 3년)에 세자로 책봉되어 30년 가까이 세자로 있으면서 세종을 도왔으며

특히 세종 마지막 몇 년간은 아픈 세종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또한 재위 기간에는 동국병감과 고려사 편찬을 완수하였고 화차 설계를 직접 하였으며

세종의 업적으로 유명한 측우기도 문종의 머리에서부터 시작되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적장자의 강력한 정통성을 가졌고 오랜 기간 세자로 있으며 대리청정까지 했기 때문에

만약 문종이 오래 살았다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도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두 번째, 세조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처음엔 진평대군으로 훗날 수양대군으로 봉해집니다.

문종의 뒤를 이어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왕이 되기 위해 계획하였고

한명회, 권람 등과 같이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을 죽이며 정권을 장악합니다.

그 후 압박을 느낀 단종은 왕에서 물러났고 수양대군은 1455년 왕위에 오릅니다.

왕이 되고 나서도 세종과 문종을 따랐던 신하들 사이에서 단종 복위 운동이 일어나자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 보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맙니다. 

찬탈로 왕이 되기는 했으나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했고

직전법 실시, 군사제도 개혁 등의 업적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세 번째, 안평대군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로 서예와 그림, 글씨에 뛰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관련된 작품으로 몽유도원도가 있는데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 자신의 꿈을 안견에게 말해 안견이 그린 것으로

여기에 안평대군이 제작 과정과 내용 등을 적은 작품입니다.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이 황보인 김종서와 반역을 도모했다며 계유정난을 일으켰고

결국 안평대군은 강화도로 유배 보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사되었습니다.

실제로 안평대군이 반역의 의도가 있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수양대군 입장에서 자신과 대립했던 안평대군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계유정난의 정당화도 필요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희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이 외에도 세종대왕 가계도를 보면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은 수양대군을 지지하였고

수양대군이 왕이 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에 큰 시련이나 어려움 없이 지냈습니다.

반면에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은 단종을 지지하며 수양대군의 행동에 반대하였고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한 후에 다시 한번 단종 복위를 꾀했으나 발각되어 처형당합니다.


훈민정음, 인재등용, 과학기술, 농업기술, 의료기술 등 많은 업적을 남겨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세종대왕이지만

단순하게 이러한 가족사만 생각해본다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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