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셋째 아들인데도 왕이 된 이유
우리나라 역사 중에 제일 위대한 왕을 꼽는다면
많은 분들이 제일 먼저 세종대왕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으며 과학 기술과 문화 발전에 힘썼고
북쪽으로 4군 6진을 개척하여 현재 한반도의 국경선을 만들었습니다.
이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은 사실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조선은 장자 계승이 원칙이었으며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셋째 아들인 세종대왕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양녕대군 '이제' |
태종의 첫째 아들은 양녕대군입니다.
양녕대군은 어린 나이에 왕세자에 책봉되어
왕이 될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엄격한 궁 생활을 적응하지 못했고
사냥을 좋아하고 기생과 어울려 놀아 태종의 노여움을 사기 시작합니다.
태종은 이런 양녕대군이 못마땅하였지만
자신이 장자 계승의 원칙을 무시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다시는 장자 계승 원칙을 깨고 싶지 않아서
양녕을 내치지 못하고 정신 차리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양녕대군은 태종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결정적인 사고를 치는데
전 중추부사였던 곽선의 첩인 어리와 간통한 사건입니다.
양녕이 어리에게 빠져 매일 정을 나눈 것을 태종이 알게 되었고
태종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으나 양녕의 다짐을 받고 용서해줍니다.
하지만 어리가 그리웠던 양녕은 어리를 계속 만나며
이번에는 아이까지 갖게 하였습니다.
이때 태종은 양녕대군을 폐위할 결심을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왕이 되기 쉽지 않았던 세종 '이도' |
그리하여 태종은 양녕을 폐위시킬 결심을 하였지만
처음부터 충녕(세종)을 세자로 삼을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태종은 끝까지 장자 계승 원칙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손자인 양녕의 아들을 세자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라도 장자 계승 원칙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죠.
하지만 양녕의 아들은 너무 어리기도 하였고
여러 대신들이 어진 사람을 세자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태종은 고민 끝에 왕의 재목으로 손색이 없던 충녕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양녕과 충녕의 어머니이자 태종의 부인인 원경왕후는
이것이 형제간의 분란이라 생각하여 끝까지 반대했다고 합니다.
결론 |
세자를 바꾼 태종은 충녕이 하루빨리 왕의 모습을 갖추길 원하여
세자로 책봉한지 몇 달 되지 않아 선위를 발표합니다.
말로 받는 교육 보다 실제로 하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세종이 완벽하게 왕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줍니다.
이렇게 왕이 된 세종은 조선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니
태종의 가장 큰 업적은 '세종을 왕으로 만든 것'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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