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왕건의 부인이 29명이나 되었던 이유
왕건은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웁니다.
그리고 936년 후백제와 마지막 싸움을 승리하고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합니다.
이렇게 후삼국 통일의 주인공이 된 왕건에게는 신기한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인이 29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고려의 다른 왕들을 봐도 왕건만큼 부인이 많았던 왕은 없습니다.
아무리 왕이었다지만 어떻게 부인이 29명이나 되었을까요?
태조왕건의 부인이 29명이나 되었던 이유 |
통일 신라 말에는 많은 호족들이 있었습니다.
호족들은 각자 자기 지역을 다스렸으며 사병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몇몇 호족들은 세력이 매우 강했습니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나라의 기반을 다지고 백성들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
호족들과의 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호족들과 연합하면서도 왕권을 강화할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왕건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그래서 왕건은 세력이 강한 호족의 딸들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 29명이나 되었는데
29명 중 첫 번째 부인 신혜왕후와 두 번째 부인 장화왕후를 제외하고는
전부 호족과 연합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부인들의 출신지는 경기도, 황해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모든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경기도, 황해도가 많았습니다.
또한 언니와 동생이 모두 왕건의 부인이 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결론 |
왕건은 나라의 기반을 다지고 왕권을 강화해야 되는 상황에서
결혼을 통해 피 흘리지 않고 유력 호족들과 연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인이 많았던 만큼 자식도 많았기 때문에
왕건이 죽은 후 왕위 문제로 고려가 혼란에 빠지게 되는 건 안타까운 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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