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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이야기

[역사]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한 이유

by 불빛_ 2019.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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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한 이유


이번에는 어린 나이에 즉위해 비운의 왕이 된 단종과

끝까지 충절을 지킨 사육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단종과 수양대군

세종의 첫째 아들인 문종은 몸이 약하고 병이 있어

왕위에 오른 후 오래 버티지 못하고 2년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 후 문종의 아들인 단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어린 조카가 왕이 되자 세종의 둘째 아들이며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은 

왕이 될 기회를 노렸고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합니다.

위협을 느낀 단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넘겼고

수양대군이 왕의 자리에 오르니 그가 세조입니다.



사육신과 단종 복위 운동 

사육신은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은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가 목숨을 잃은 충신을 말합니다.

목숨을 잃은 여섯 명의 신하라고 하여 사육신이라고 하는데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를 일컫습니다.


세종과 문종에게 신임을 받았던 몇몇 신하들은 단종을 복위시킬 준비를 하였고

그리하여 1456년 명의 사신을 위한 잔치에서 세조와 그의 신하들을 제거하려 합니다.

잔치에서 왕과 세자를 호위하는 사람을 별운검이라고 하는데

별운검을 통해서 세조와 그의 신하들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연회 장소가 좁다는 이유로 별운검이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계획을 미룹니다.

하지만 모든 계획을 알고 있던 김질이라는 사람이 배신을 하여 

이 사실을 알려 단종 복위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단종 복위 운동으로 처형된 사람들은 훨씬 많으나

훗날 이 여섯 명의 행적이 후세에 남겨져 사육신이 되었고

그 후 숙종 때인 1691년 관직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결론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하여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었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고 맙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고 노산군에서 다시 강봉되어 

서인이 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후 200년이 지나 숙종 때에 되어서야 노산대군으로 추봉 되고 

복위되어 단종이 되었다고 하니 정말 비운의 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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