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전멸한 이유
임진왜란의 휴전이 결렬되고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은 파직되어 압송되었으며
그의 대체자로 통제사에 원균이 임명됩니다.
원균은 이순신보다 나이도 많았고 경력도 많았기 때문에
상관이었던 이순신에게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정유재란 발발 무렵 가토군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출정을 하지 않던 이순신의 뜻에 반대하여 출정을 해야 한다고 장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전 글 -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받아야만 했던 이유 참고)
통제사가 된 원균에게 조정은 출정하여 적을 물리치라는 명령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원균이 통제사가 되어보니 적의 본진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이순신의 뜻이 맞았음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출정을 미루기 시작하였고
여기에 더해 육군이 먼저 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도원수 권율이 찾아와 원균에게 곤장을 치기까지 합니다.
결국 원균은 억지로 출정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칠천량 해전이 일어난 이유입니다.
1597년 8월(음력7월) 원균은 100여 척이 넘는 판옥선, 거북선에 병력을 총동원하여 부산으로 출정합니다.
그러나 억지로 떠밀려 출정한 원균이 일본군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부산 인근에서 판옥선 12척을 잃었으며 가덕도에서는 적의 기습을 받아 도주하였고
거제도 부근에 있는 섬 칠천도에서 일본군에게 포위되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퇴각합니다.
결국 육지로 도망한 원균은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고 합니다.
이 전투로 미리 도주한 배설의 판옥선 12척을 제외한 모든 거북선과 판옥선이 침몰하였으며
이억기, 최호 등 많은 장수와 병사들이 대부분 전사하게 됩니다.
조선은 재해권을 상실했으며 전라도 인근 해역까지 일본군에게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결국 선조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는 글과 함께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임명하게 되었고
이순신은 배설이 가지고 도주했던 12척의 배만을 가지고 전투준비를 합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12척의 배로는 무모해 보이니 육군과 합쳐서 전투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였고
이때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등장합니다.
결국 이순신은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칠천량해전이 있었기에 그 유명한 명량해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 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면 당시 조선에게는 더 좋은일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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