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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이야기

[역사] 고구려가 멸망한 결정적인 이유, 연개소문의 죽음과 연남생의 투항

by 불빛_ 2020.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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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멸망한 결정적인 원인 이유, 연개소문의 죽음과 연남생의 투항


660년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였고 

그 후 8년 뒤인 668년 고구려 또한 신라와 당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고구려는 백제에 비하면 훨씬 큰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수나라와 당나라의 공격을 몇 차례나 막아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수나라는 고구려와의 전쟁에 국력을 쏟아부어 멸망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강했던 고구려가 멸망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일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연개소문의 첫째 아들 연남생이 당나라로 투항한 것입니다.



연개소문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등장하자 고구려에서는 당나라와 화친 정책을 폈습니다.

고구려는 당의 요구에 굽신거렸고 연개소문은 이를 반대하며 귀족들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귀족들은 연개소문의 집안이 더 이상 강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연개소문을 견제하였고 

이에 연개소문은 642년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왕으로 세웁니다.


연개소문이 권력을 잡자 당 태종은 '신하 된 자가 정변을 일으켜 왕을 죽였다'며 645년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당 태종 또한 왕이 되기 위해 형과 동생을 죽이고 아버지를 협박했던 인물이기에

그냥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은 당나라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으나

고구려의 끈질긴 저항으로 장기전이 되면서 당나라는 군량이 부족해졌고

마침내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가 승리를 거두면서 군사를 철수하게 됩니다.


그 후에도 당나라는 여러 차례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이 중심에 있었던 연개소문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 그로 인해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연개소문은 영웅이 되었지만 잘못한 것이 있으니 후계체제를 제대로 해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개소문에게는 첫째 남생, 둘째 남건, 셋째 남산 세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연개소문은 죽기 전 아들들에게 '서로 화합하고 다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죽게 되는데

문제는 세 아들들이 아버지의 말을 명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는 고구려 멸망의 시작이 됩니다.




연남생의 투항 

연개소문이 죽자 첫째 아들 연남생은 아버지를 이어 권력을 잡습니다.

그러나 연남생은 연개소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고구려의 권력자가 되었기 때문에

연개소문만큼의 권력을 가질 수 없었으며 또한 이를 반대하며 따르지 않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연남생은 지방을 순시하기 위해 동생 남건, 남산에게 나라의 일을 맡기고 수도에서 떠나 있었는데

반대하던 무리들은 이를 기회라고 생각하여 남건과 남산을 찾아가 '남생이 의심하고 있다'고 말하였고

남생에게도 사람을 보내 '두 동생이 남생의 자리를 뺏으려고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연남생은 은밀히 부하를 보내 아우들의 움직임을 살피게 했는데

그 부하가 하필 남건 남산에게 잡히고 맙니다.

이렇게 되자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남건 남산도 '형이 자신들을 의심한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고

보장왕을 찾아가 형이 돌아오도록 왕명을 내릴 것을 요청했습니다.


보장왕이 남건 남산의 요청에 응하여 남생에게 돌아오라고 하였으나 

남생은 이것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라 생각하여 왕명을 거역하고 가지 않았고

더 확신이 찬 남건 남산은 모든 권력을 자신들이 잡으면서 남생의 아들 헌충을 죽여 버립니다.


동생들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고 아들도 죽였으며 자신을 잡기 위해 군대를 보낸 것도 알게 되자

연남생은 국내성으로 피신하여 당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당은 처음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남생의 다른 아들인 헌성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자

이를 기회라고 생각하고 군대를 보내 연남생을 돕게 하였습니다.


결국 연남생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국내성 등 여러 성과 

자신을 따르던 백성, 군사들과 같이 당에 항복했고 

당에서는 연남생을 평양주행군대총관 지절안무대사에 임명합니다.

당나라는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여러 번 패하며 싸울 의지가 없어진 후였지만

고구려의 내부 사정을 전부 알고 있는 연남생이 투항해오자 다시 고구려를 공격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의 남부를 관리하고 있던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조카들의 권력 다툼을 보고 

여러 성과 주민들과 함께 신라에 항복해버리니 고구려는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결론 

당은 667년 연남생을 앞세워 고구려를 공격했고 고구려는 668년 멸망하게 됩니다.

고구려의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연남생이 모든 정보를 알려주었고

백제가 이미 멸망했기 때문에 신라가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당을 지원해주자

끝까지 버티던 고구려도 평양성이 함락되며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700년간 유지해 오던 고구려는 이렇게 허무하게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지속적인 공격도 계속해서 막아내던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아들들의 권력 싸움으로 인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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